인간관계

한선영 ㅣ 2020. 12. 7. 02:51

요즘 서점에 가면 도움이 되지 않고 실용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에 힘쓰기보다 현실에 안주하게 하고 자기 합리화에 도움되는 글뿐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런 긴 제목의 글이다.

 

책을 사서 펼쳐보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못난 것은 사회 탓이에요."라는 뉘앙스의 글만 잔뜩 쓰여있고, 그림이 반인 누구나 쓸 수 있을 것 같은 글뿐이다. 

 

내가 꼬인건가? 

 

나는 이런 글들은 사람을 위로해주는 척하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사람을 망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위로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진짜 도움되는 '위로'는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자신의 실수, 잘못에 대해 반성할 수 있도록 돕고 앞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한다. 

 

그저 말 뿐인 위로는 당시에는 도움을 주는 쓴 말을 해주는 말보다 더 달콤하고 와 닿을 수 있다. 힘들 때 그런 말을 들어서 극복해나가는 것도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본인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않고 그저 "괜찮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글들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닫힌 사고를 하게 한다. 보통 아이들을 키울 때도 잘못한 점은 따끔하게 혼을 내고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주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돕지 않고 스스로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키우라고 말한다. 어른이라고 다를 것 없고 조금 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자신의 잘못이나 자신이 부족한 점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오냐오냐' 식으로 넘어간다면 그 사람은 몸만 커진 어른일 뿐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네잎클로버에 관한 사실이었는데, 네 잎 클로버는 자랄 때부터 네 잎 클로버로 자라는 것이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세 잎 클로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서 그 사이로 잎이 하나 더 생기면서 네 잎 클로버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 잎 클로버는 상처가 남에도 죽지 않고 잎이 나서 네 잎 클로버가 돼서 '행운'을 의미한다고 책에서 말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이게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에 참 와 닿는 글이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닌 글이었지만 그저 질 수도 있었던 세 잎 클로버가 극복해서 네 잎 클로버로 예쁘게 피어나는 것은 인간과도 같다고 본다. 사람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상처가 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신 나름대로 극복하여 꽃을 피울 수도 있고 그저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처 없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실패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누군가 언젠가 절망을 맛보게 된다. 이것은 사실이다. 언제 그런 절망을 하는가 이런 것은 정해지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나는 크게 절망 중이지만, 내가 꽃이 피어나는 날이 오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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