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가족은 아니지만 우리 외할머니보다도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이 제 눈앞에서 떠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치매가 심하셨지만 저는 그분이 밉거나 싫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기운이 넘치셔서 간병사님과 "할머니는 정말 오래 사실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순간에,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가족처럼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지만, 몇 달 동안 매일 곁에 붙어 있었기에 할머니가 하셨던 모든 말씀과 자주 하시던 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같은 날, 제 맞은편에 계시던 다른 할머니는 건강을 되찾아 퇴원하셨습니다. 정말 몇 시간 차이로 한 분은 가족들이 찾아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했고, 한 분은 웃으며 행복하게 병원을 나가셨습니다. 좋아져서 나가시는 분께..
괜찮다는 말로 나를 속였던 시간들예전에는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래?"라고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때는 지옥 같았으니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그런데 지금 떠올려 보면, 그렇게까지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그때의 현재를 지옥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그 하루하루에도 감사할 만한 순간과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굳이 담아 두지 않아도 될 타인의 말과 행동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고,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돌렸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돌이켜 보면 그건 일종의 자의식 과잉이었다.어린 시절, 그리고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때어릴 적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들은 엄..
끝나지 않는 질문도대체 무엇을 해야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요즘은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고 느낀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내 삶에 충실한가. 나의 회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금의 모습에 그저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어떤 태도로 대해 주어야 나는 비로소 만족할 수 있을까.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사실 나도 이제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나를 통해 얻는 이득도 없으니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럼에도 나는 돌아오지 않을 연락을 계속 보냈다. 빈말일지라도 누군가의 동정과 위로, 응원과 관심이 닿..
내가 떨어지자마자 그 소리를 듣고 119에 신고해 준 아파트 주민분, 밉습니다. 상태가 심각하다며 한림대병원이 아니라 굳이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이송해 준 선생님, 밉습니다. 나를 살리라고 수술비를 대준 외할머니, 밉습니다. 의사에게 수술하지 말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다쳤을 때, "죽으면 그게 복"이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중환자실에서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누워 있던 나를 보고 그냥 죽이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주변 사람들, 밉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나의 행복을 빌어 준 사람들, 밉습니다.병원에 있는 동안 나를 버린 친구들,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으로만 남자며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했던 친구,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나둘 나를 차단해 간 친구들, ..
요즘 들어 예전 생각들이 자주 떠오른다. 돌아보면 나는 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시작한 일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남들에게 조금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노래를 시작한 이유도 그랬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중간은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 첫 시험을 보고 나서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간 대학도 제대로 못 가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그래서 다른 데서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너 노래 좀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어떻게든 나에게도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를 졸라 보컬 레슨을 시작했다. 나밖에 없던 엄마는 딸에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
요즘 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인지 수술 부위가 많은 몸이 유독 아프다. 그렇지만 벌써 다친 지 5년이 넘었다. 2021년 6월 13일이었으니까, 벌써 5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이젠 이 아픔과 고통이 익숙해졌다. 못 움직이는 것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그저 '젊은 장애인'으로 본다는 것도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두고 남들이 뒤에서 '꼴값'이라고 말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사실 병원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못했고, 치료도 성실히 받지 않았다. 이건 다 내 업보인 것 같다.다치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남들을 진심으로 대하..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지킬 줄 알며,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준비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때 그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침착하게 대책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또한 어른이란,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탁을 할 때도, 누군가를 대할 때도 늘 예의를 갖추는 사람. 자신의 사람을 챙길 줄 알고,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하나의 사건을 단 하나의 시선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여러 관점을 두루 살펴 우선순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여러 시각을 조율하여 객관적인 판단에..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지 않다. 아니, 아주 조금은 미운 것 같기도 하다.돌이켜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좋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너희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 편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차갑게 등을 돌릴 줄은 몰랐다.나의 성장 과정 자체가 참 외로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누군가를 붙잡으면 끈질기게, 조금은 서툴게 붙잡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곁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겨우 괜찮아지려 할 때쯤이면 늘 무슨 일이 생기고, 그 사람은 떠나갔다..
며칠 전, 평소 친구로 지내던 사람에게 안부를 물었다. 별다른 의도도, 숨은 뜻도 없었다. 그저 친구였으니까.그런데 돌아온 건 안부가 아니라 그 친구의 여자친구로부터 온 날카로운 말들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곧 상처가 됐다. 누군가를 친구로서 챙기는 마음이 이렇게 오해받고, 이렇게 쉽게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더 아팠던 건, 그 말들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내가 가진 장애와 내가 지나온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내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여기고 그 자리를 찔렀다.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며 복종을 요구하는 말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걸 분명히 느..
엄마가 선영이한테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 딸로 태어나게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오늘 새벽, 생일 축하 메시지 뒤에 엄마가 조용히 덧붙인 말이었다.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왜 엄마가 미안해해야 할까.사실은, 내가 더 미안한데.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나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항상 그 이상으로.우리 집이 넉넉했던 건 아니다. 누군가처럼 화려하게 많은 걸 가진 건 아니었다.그런데도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들을 한 번도 가볍게 넘긴 적이 없었다.무용을 하고 싶다고 하면 보내줬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배우게 해줬다. 고등학교 때는 갑자기 실용음악과를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도 보컬 레슨까지 시켜줬다.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선택들 뒤에는 항상 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