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떨어지자마자 그 소리를 듣고 119에 신고해 준 아파트 주민분, 밉습니다. 상태가 심각하다며 한림대병원이 아니라 굳이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이송해 준 선생님, 밉습니다. 나를 살리라고 수술비를 대준 외할머니, 밉습니다. 의사에게 수술하지 말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다쳤을 때, "죽으면 그게 복"이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중환자실에서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누워 있던 나를 보고 그냥 죽이라고 했던 아빠, 감사합니다. 그 시간 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주변 사람들, 밉습니다. 그렇게 살아난 나의 행복을 빌어 준 사람들, 밉습니다.병원에 있는 동안 나를 버린 친구들, 감사합니다. 좋은 추억으로만 남자며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했던 친구,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나둘 나를 차단해 간 친구들, ..
요즘 들어 예전 생각들이 자주 떠오른다. 돌아보면 나는 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시작한 일들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남들에게 조금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노래를 시작한 이유도 그랬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중간은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와 첫 시험을 보고 나서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간 대학도 제대로 못 가고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그래서 다른 데서라도 인정받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너 노래 좀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어떻게든 나에게도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엄마를 졸라 보컬 레슨을 시작했다. 나밖에 없던 엄마는 딸에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
요즘 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인지 수술 부위가 많은 몸이 유독 아프다. 그렇지만 벌써 다친 지 5년이 넘었다. 2021년 6월 13일이었으니까, 벌써 5년 하고도 한 달이 지났다.이젠 이 아픔과 고통이 익숙해졌다. 못 움직이는 것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그저 '젊은 장애인'으로 본다는 것도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두고 남들이 뒤에서 '꼴값'이라고 말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사실 병원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못했고, 치료도 성실히 받지 않았다. 이건 다 내 업보인 것 같다.다치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남들을 진심으로 대하..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지킬 줄 알며,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준비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사람.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쳤을 때 그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침착하게 대책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또한 어른이란,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탁을 할 때도, 누군가를 대할 때도 늘 예의를 갖추는 사람. 자신의 사람을 챙길 줄 알고,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사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하나의 사건을 단 하나의 시선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여러 관점을 두루 살펴 우선순위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게 여러 시각을 조율하여 객관적인 판단에..
사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지 않다. 아니, 아주 조금은 미운 것 같기도 하다.돌이켜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물론 '좋은 사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너희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 편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사람들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차갑게 등을 돌릴 줄은 몰랐다.나의 성장 과정 자체가 참 외로웠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누군가를 붙잡으면 끈질기게, 조금은 서툴게 붙잡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곁엔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겨우 괜찮아지려 할 때쯤이면 늘 무슨 일이 생기고, 그 사람은 떠나갔다..
며칠 전, 평소 친구로 지내던 사람에게 안부를 물었다. 별다른 의도도, 숨은 뜻도 없었다. 그저 친구였으니까.그런데 돌아온 건 안부가 아니라 그 친구의 여자친구로부터 온 날카로운 말들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곧 상처가 됐다. 누군가를 친구로서 챙기는 마음이 이렇게 오해받고, 이렇게 쉽게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더 아팠던 건, 그 말들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 내가 가진 장애와 내가 지나온 가장 어두운 시간들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내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여기고 그 자리를 찔렀다.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며 복종을 요구하는 말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지 않다는 걸 분명히 느..
엄마가 선영이한테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 딸로 태어나게 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오늘 새벽, 생일 축하 메시지 뒤에 엄마가 조용히 덧붙인 말이었다.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왜 엄마가 미안해해야 할까.사실은, 내가 더 미안한데.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나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항상 그 이상으로.우리 집이 넉넉했던 건 아니다. 누군가처럼 화려하게 많은 걸 가진 건 아니었다.그런데도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들을 한 번도 가볍게 넘긴 적이 없었다.무용을 하고 싶다고 하면 보내줬고,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배우게 해줬다. 고등학교 때는 갑자기 실용음악과를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도 보컬 레슨까지 시켜줬다.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선택들 뒤에는 항상 엄..
1. 내가 했던 오해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다.내가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줬는데, 결국 나를 버린 건 그들의 이기심이라고.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그건 사실이 아니었다.오히려 그들을 저버린 건 나였다.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어떻게든 이겨내 보라고 믿어주었다.하지만 나는 그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오히려 그 사랑을 의심하며 더 이기적으로 행동했다.⸻2.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방식나는 누구에게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그리고 누구와도 갑을 관계가 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나는 모든 관계에서 ‘을’을 자처하고 있었다.그건 결국 나에게 독이 되었다.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이렇게 안 해주면, 결국 버려질 거야.”그래서 더 잘해주고, 더 맞춰주고,더 많이 내어주려고 했다.⸻3..
안녕.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써.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실 하나야. 나를 알던 사람들, 그리고 한때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야.나는 2021년 6월 13일에 자살 시도를 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어. 벌써 햇수로 5년이 되었어. 요즘은 병원도 화성에서 수원으로 옮겨서 오랜만에 재활 치료를 다시 시작했어.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내가 정말 그날 우리 집 14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게 맞을까?솔직히 그 순간의 기억이 없어.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세탁기를 끌어와서 밟고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걸 할 만큼 힘도 운동신경도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일이 믿기지 않아.그날 내가 남겨 놓은 기록을 보면..
요즘에는 내가 참 걱정이 많고 불안하다. 병원에 있는지 거의 오 년이 다 돼 가니까 너무 지치고 힘들다. 나도 힘들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엄마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면 운동도 열심히 해야 되는데 자꾸만 놀게 된다. 이젠 미쳐버린 거 같다. 지치고 힘들다. 누구나 내 상황이 되면 힘들겠지? 그렇지만 이겨내는 사람도 있을텐데 내가 정신력이 부족한 거 같다. 많이 요즘 울 기도 한다. 이젠 약의 의존 싶어 한다. 약을끊어 싶었지만 해 보니까 나는 안 되겠다. 지금 우울증이 생긴지 거의 15년 다 돼 갔는데 너무 힘들다. 평생 일을 벌써 생각하니까 나는 그때 죽었으면 한다.그러면 가족들도 편하고 너도 편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까지 힘든데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나는 그걸..